스타트업 시작 후 한 달 만에 벌어진 일

Sungwon Lee
10 min readMar 3, 2023

(짐작하겠지만 제목은 낚시용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한지 꽉 찬 한 달이 지났다. 기술과 사람들과 시대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창업한 스타트업 파운더로서 한 달 동안의 경험과 학습을 정리해본다.

TL;DR

  • 첫 제품을 런칭하고, 미국 시장에 알리고, 고객을 통해 학습했다. (Elaborate.ai)
  • 첫 번째 피봇을 감행하고 MVP를 런칭했다. (Runbear.io)
  • (보너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도구들

이번 달에 우리가 배운 내용

빠르고 지속적인 출시

“런칭은 계속 하는거다.”

모든 스타트업이 비정형이라는 스타트업 씬에서도 몇 가지 교리처럼 여겨지는 조언이 있다. 빠른 런칭 또한 그 중 하나다. 결제 방법도 없는 첫 버전을 런칭한 에어비앤비, 채널이 하나밖에 없었던 트위치를 기억해야 한다. 6개월 동안 개발하고 원기옥을 모아서 한 번에 런칭하는 것이 아니라, 몇 주 단위로 만들어서 런칭하고 학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 하에 우리도 시작하자마자 Elaborate AI를 만들고 출시했다. 일주일 만에 개발했다고 자랑을 하긴 했지만, 요새 개발 좀 한다는(?) 팀들에게 이런 개발 속도는 별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런칭 이후의 학습과 실행 역량이다.

Go-To-Market, GTM

시장 진입 전략은 너무 너무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B2B SaaS 제품을 만들려는 우리에게 시장 진입은 아직 안개가 많이 껴있는 분야다.

런칭 덕분에 미국 시장에서는 간단한 홍보 조차 쉽지 않다는 점을 배웠다. ’일단 런칭하고 본다‘ 는 접근으로 서비스를 출시했으니 시장 진입 전략을 미리 준비한 상황은 아니었다. 프로덕트 헌트 경험이 있는 노아의 조언에 따라 막연히 해커 뉴스와 레딧에 글을 써보면 되겠지 생각했다. 국내에서 링크드인과 페이스북 홍보 만으로도 초기 피드백을 받을 정도의 관심을 모았으니 그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왠걸, 미국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우리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카르마(Karma)가 없어서 글을 작성할 수 조차 없었다.

런칭 후 일주일 동안 국내 피드백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한 뒤 그 다음 일주일은 오롯이 레딧과 해커뉴스, 그리고 트위터에서 활동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레딧 경험이 많으신 비블 대표님과 지수님께 조언도 구해가며 삽질을 시작했다. 해커 뉴스에서 첫 번째 받은 피드백은 “가입 전에 써볼 수 있게 해주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보여줘야 내가 가입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던가. 부랴부랴 랜딩에 스크린샷도 추가하고, 용례도 추가하고, 삽질해가며 영상도 만들었다.

Elaborate AI Service Introduction

확장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라(Do things don’t scale)

Paul Graham의 “Do things don’t scale.” 역시 교리처럼 여겨지는 조언이다.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말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루 내내 돌아다니며 글을 남기고, 댓글을 달고, DM을 보내도 결과가 눈에 띄게 발생하지 않는다. 고작 일주일 정도지만 자기 효능감이 저하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교리는 교리다. 꾸준한 소통 덕분에 초기 피드백을 모을 수 있는 정도의 트래픽이 생겼다. 여전히 갈 길은 너무 너무 멀지만, 미국 시장에서 제품 출시 이후 처음의 막막함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약간은 감을 잡은 것 같다.

고객에게 배우기

‘고객 중심’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설문 몇 번 했다고, 데이터 조금 봤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다.

더 깊은 학습을 위해 몇 차례의 오프라인 인터뷰와 온라인 인터뷰를 가졌다. 주기적으로 공유 세션을 가져야 하는 리더, 사내 교육 세션을 진행하는 피플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야하는 교육자를 만나고 인터뷰했다. 그들은 모두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시간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인터뷰 몇 번 했다고 고객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고객을 통해 배우는 방법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이제는 고객과의 접점을 더욱 많이 늘려야한다.

관심과 응원

런칭 덕분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아직 법인 설립도 안된 스타트업임에도 VC 분들과 개인 투자자 분들에게도 연락을 받았다. 어제 새벽에는 서비스를 보고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 미국 VC와 온라인 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애용했던 듀오링고의 투자사여서 왠지 더 반가웠다.)

물론 아직은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관심과 응원 덕분에 더욱 힘내서 달려가게 되는 것 같다. 훌륭한 분들 덕분에 좋은 질문도 정말 많이 얻었다. 감사한 마음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

첫 번째 피봇(Pivot)

스타트업의 수명을 “실행 가능한 피봇 수 / 남은 런웨이”로 계산하기도 한다. 자금 뿐만 아니라 빠르게 학습하고 피봇할 수 있는 역량 역시 스타트업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안개 속에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는 단서를 찾아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단, 피봇은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부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우리의 비전은 “To make people stay simple and be more productive”다.

피봇의 근거

비전 달성을 위해 첫 번째 세운 가설은 “공유 미팅(a.k.a Sync-up meeting or status meeting)에 필요한 자료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면 사람들의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였다. Elaborate.ai는 같은 공유 내용을 각각 글머리 기호, 서술(Narrative), 슬라이드(e.g., PPT) 형태로 잘 변환할 수 있는지 실현 가능성 검증과 가치 검증을 위한 실험이었다. 실험의 목적이 슬라이드 제작 효율화가 아니라 소통 비용 절감이었기에 Tome과 같은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봇을 결정하게 됐다.

  • 너무 넓은 고객 범위 — 중간 정도로 행복한 100명의 고객보다는 최고로 행복한 1명의 고객이 있어야 한다. 구매자 퍼소나(Buyer persona)를 충분히 좁게 잡지 못하면 제품을 좋아하는 사용자는 생겨도 돈을 내는 사용자가 없을 수 있다.
  • 고객이 느끼는 문제의 크기 — 조사 결과 팀 리더가 공유 미팅에 사용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4.5시간 정도로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큰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공유를 잘 받고 잘 하는 것 또한 그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최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을 사용한 뒤 ‘예전에는 어떻게 그러고 살았지..’ 라고 느끼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오캄의 면도날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 혁신의 역설 (참고) — 기술의 빠른 발전은 문제 자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의 첫 번째 가설은 너무 많은 정보가 만드는 인지 과부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LLM을 활용해서 공유 미팅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면서 공유 미팅의 비효율이 인지 검색(Cognitive search) 영역 안에서 해소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피봇의 방향

AI의 발전은 인지 영역을 거쳐 생성 영역까지 발전했다. AI가 글, 코드, 이미지, 영상까지도 만들어준다. 엄청난 세상이다. 우리는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AI라는 공은 어디로 굴러갈까?

AI가 미치는 영향력은 곧 실행의 영역까지 확대될 것이다. 의외로 생성 영역에서 사람이 용인하는 수준은 유연한 반면 실행의 영역에서는 단순한 업무도 기준이 훨씬 더 높아진다. 손이 약간 어색하게 그려진 사진이라도 활용할 방법은 많지만, 가끔 계좌 번호를 틀리는 AI에게 공과금 관리를 대신 맡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Runbear.io

https://runbear.ioExecutable runbook management system, powered by AI.

우리는 실행의 영역에서 사람이 직접 수행하며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문제로 우리가 직접 겪었던 서비스 장애와 해결에 관한 문제를 선택했다. 서비스 장애는 매우 비싼 문제다. 장애 시간에 비례해서 잃는 매출은 물론이고, 파트너십과 회사 신뢰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비스 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와 방법론이 상당히 많은데, 우리는 그 중 런북(Runbook)에 집중하고 있다. (런북은 특정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단계별 설명서라고 볼 수 있다.)

Runbear.io는 장애 복구, 운영 업무, 문제 해결 등에 활용되는 런북을 실제로 실행 가능한 형태(Executable)로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다. 단기적으로는 AI를 활용해서 런북 작성과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AI가 회사 기술 스택에 맞게 해결 방안을 컨설팅하고 더 나아가 직접 상황을 판단하고 실행까지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예정이다.

다음 단계

Runbear는 제품 관점에서 ElaborateAI와 상당히 다른 제품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비전과 맞닿아있다. 특정 분야의 세부 지식은 몰라도 원하는 과업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Runbear는 사람들의 인지 과부하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게 도와줄 것이다.

고객과 문제가 더 뾰족해진만큼 앞으로 한 달은 더 깊은 학습과 빠른 실행에 집중할 예정이다.

ps. Elaborate AI는 커뮤니티의 힘을 믿고 오픈소스로 풀어볼까 고민 중이다.

(보너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도구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The right it)은 더 빠르게 고객의 필요를 검증하는 여러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가짜 문(Fake door) 기법은 서점을 차리기 전에 서점 문을 먼저 세워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지 확인해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있지 않은가. 요새는 가짜 문을 만드는 시간도 아깝다.

우리는 시간 아끼기 자원을 위해 최대한 많은 SaaS 제품을 활용하기로 했다. 제품 개발과 런칭, MVP 검증을 위해 다음과 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기획

  • ChatGPT — 너무 당연해서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Proofread this:”를 상당히 많이 활용했다.
  • Notion AI — ChatGPT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 아깝다.
  • Typedream — Webflow와 Mixo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제품이다.
  • Mixo — 실제 사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가짜 문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
  • Crisp, Formspree — 고객 피드백을 쉽고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
  • Mailerlite — 메일침프보다 싸고 단순하다.
  • Avodocs, FreePrivacyPolicy — Terms & Privacy 직접 다 쓸 수는 없다.

개발

  • Vercel — 처음부터 Kubernetes를 구성하고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Supabase — 로그인과 DB는 시작을 느리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 Divjoy — 초기 프로젝트 구성을 도와준다.
  • DaisyUI, Tailwind CSS — 레이아웃에 들어가는 공수를 한없이 줄여준다.

디자인

  • Canva — 우리는 아직 디자이너가 없다. 하지만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 수는 있다.
  • Midjourney — 고백한다. 로고 초안은 미드저니가 해줬다. 우리 퍼소나 Lily 와 Roy 이미지도 Midjourney가 그려줬다.
  • Figma — 없이 어떻게 디자인했지.

운영

  • Cal.com — 없이 어떻게 미팅 일정 잡았지.
  • Slack — 없이 어떻게 일했지.
  • Retool, Airplane, Zapier — 몇 가지 시도했다가 활용은 안하게 되었지만, No-code와 low-code 활용도는 점차 높아질 것 같다.

https://theresanaiforthat.com 에 가보면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AI 제품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빠르고 싶으면 한 없이 빨라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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