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Combinator 인터뷰 + 탈락 썰

Sungwon Lee
6 min readJun 8, 2023

지난 5월 한 달동안 Runbear 창업 이후 가장 격하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자유이용권으로 즐겼다. 설렘과 아쉬움, 후회와 배움이 함께했던 한 달이었다. 매우 많았던 사건 중 특히 Y Combinator (a.k.a YC) 인터뷰는 미친듯한 속도감과 더불어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져다주었다.

Y Combinator

지원

지난 4월 초 YC에 지원서를 넣었다. 평소 YC 영상을 보며 많이 배워왔기에 YC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 만으로도 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원서가 물어보는 그리 많지 않은 질문은 놀랍게도 생각보다 평범하지만 적절히 답을 하려면 꽤나 많은 생각과 정리를 요한다. 특히 YC에서 직접 제안하는 지원서 작성 방식을 따라가다보면 꾸밈을 줄이고 간결하게 표현하는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원서를 넣었지만 솔직히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이제 막 제품을 런칭한 극초기 스타트업이었다. 어디에선가 100배수에 달하는 지원자가 몰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 스스로는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과 그간의 좋은 진척 사항이 있지만, 전세계에서 몰리는 훌륭한 지원자들 중 우리가 더 도드라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미 연매출이 꽤 있는 기업들도 떨어진다고 한다.)

인터뷰 준비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메일이 도착했다. YC 1차 합격 소식, 3일 뒤 인터뷰를 하자는 이메일이었다. 겨우 1차 합격 소식이었지만 날아갈 듯이 기뻤다. 리암과 함께 통화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미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3일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일은 항상 손잡고 함께 밀려온다고 하더니, 마침 월요일에 중요한 미팅이 하나 잡혀있었다. 주말 동안 미팅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인터뷰 준비를 했다. YC alumni 들이 공유한 인터뷰 가이드만 읽어도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데모 준비도 하고, 영어를 위해 입도 좀 풀고, 새벽 5시 30분 인터뷰를 대비해서 잠자리에도 일찍 들었다.

우리는 준비도 많이 했고, 팀도 좋고, 실행 속도도 빨랐다. 마음만은 이미 YC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인터뷰에 참여했고, 10분 뒤 난 자기 혐오에 빠졌다.

인터뷰

YC 공식 인터뷰 준비 사항을 보면 “우리는 놀랍도록 당연하고 일반적인 질문을 물어보니 너무 과하게 준비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그 말이 진짜임을 새삼 깨달았다.

인터뷰는 10분 동안 진행된다.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간략하게 — YC 를 준비하면서 간결(Concise)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들었다 —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네 명의 인터뷰어가 들어왔고, 주로 한 명의 인터뷰어가 질문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창업했던 인터뷰어였다.)

초중반 질문들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문제와 시장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질문들이었고, 우리가 충분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향후 고객 확대 계획을 묻는 질문에 올해 안에 PMF를 찾은 이후 공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후 나의 예상 질문은 “PMF를 찾는 기준은?” 이었다. 하지만 받은 질문은 “‘올해 안’은 너무 긴 시간이야. 좀 더 짧은 단위 계획이 있니?” 였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개의 유료 과금 고객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면 고객 확장은 따라올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다. 헌데 이를 언제까지 달성할 것인지는 모호하게 설정했다. 우리는 린하게 움직이고 싶었고, 고객에게 배운다는 변명 하에 구체적인 시간을 설정하지 않았다. 우리를 빠르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접근이 어느새 우리를 느리게 만들고 있었다.

인터뷰어는 우리를 돕기 위해 3개월 뒤 고객 수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물어봤다. 나는 세 개의 회사라고 말했고, 인터뷰 이후 이 대답을 몇 시간 동안 되뇌이며 후회했다. 내 대답은 너무 보수적이었다. 이미 얘기를 나누고 있는 회사들이 있었기에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였고, 그렇기에 좋은 목표가 아니었다. 목표를 더 높게 잡고 더 빠르게 움직일 생각을 했어야 했다. 떨어진다면 목표를 더 크게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결과

당일 오후 2시쯤 이메일이 날아왔다. (YC 최종 합격은 전화로, 불합격은 이메일로 알려준다.) 인터뷰 직전까지 높았던 기대감과 즐거웠던 마음은 배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YC 합격 여부와 상관 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정말 오랜만에 겪어본 탈락 경험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YC 메일은 우리가 풀고 있는 문제, 우리의 전문성, 그리고 첫 고객과의 빠른 진척에 대한 인정과 함께 이번 배치에 런베어가 합격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가 담겨있었다. 불합격의 이유는 신규 고객을 모집하기에 아직 검증할 것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가장 중요하면서도 경쟁이 심한 US 시장에서 우리가 두각을 나타내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YC가 틀렸음을 증명해달라는 말로 마무리지었다.

역설적이게도 불합격의 이유가 안도감을 주었다. 분명히 공감이 되는 문제였고,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였고, 미국 시장 중심으로 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반성 내용이었다. 충분히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목적 중심으로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다. 만약 탈락 사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때문이었다면 두고두고 그 10분을 후회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향후 계획

YC 덕분에 미국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졌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흐르는 시간은 한국에서 흐르는 시간의 속도와 다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에 대한 생각도 더욱 명확해졌다. 제품이 좋으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할 것이다”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 고객사를 만든 것”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는 단지 YC를 위한 입증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비즈니스 성장을 위한 입증이다.

YC 졸업생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YC에 합격했는가? 축하한다, 멋진 진척을 만들어서 발표(데모데이)할 때까지 당신에게 100일이 주어졌다. 떨어졌는가? 괜찮다. 더 멋진 진척을 만들어서 다시 도전하기까지 200일이 주어졌다.”

하루 정도의 우울한 감정을 씻어내고 나니 오히려 상쾌한 마음도 들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모집하는 것은 원래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빠르게 움직여서 미국 고객을 만든다면 다음 YC 배치에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좋은 제품과 비즈니스를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다. 런베어,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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