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회고 — Runbear 창업 후 10개월 간의 이야기

Sungwon Lee
6 min readDec 31, 2023

어느새 2023년 마지막 날이다. 매년 벌써라는 생각와 아직도 라는 생각이 공존하는 날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욱 그렇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삶의 속도가 3배 쯤 빨라진 것 같다.

Arthur’s Tavern in New York

세 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그 힘든 것을 왜 또?”라는 질문이었다. “아직 스타트업에 입문할 때 목표했던 글로벌 임팩트를 만들지 못해서”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한 해가 지나 뒤를 돌아보니 ‘힘들었던 기억이 잊혀져서’ 힘든 줄 모르고 무작정 뛰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선배 부모와 대화하다보면 “2년 쯤 지나면 힘든거 다 까먹고 좋은 기억만 남아서 둘째를 가지게 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창업도 마찬가지 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힘든게 다 기억 났다면 창업을 안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해수를 키우면서 육아가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하지만, 사실 대부분 과장된 엄살이고 즐거운 비명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해수 덕분에 얻는 기쁨과 즐거움, 뿌듯함이 그런 힘든 점 따위 모두 잡아먹고도 남는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도전의 어려움, 없던 것을 만드는 막막함, 예상치 못한 장벽 따위 한 명이 고객이 좋은 서비스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미션과 비전을 위해 스타트업을 시작했지만, 이 여정을 하루하루 이끌어 가는 것은 거창한 미래보다 오늘의 고객 목소리인 것 같다.

PlugBear 덕분에 따뜻한 연말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2023년 연말 우리 마음이 따뜻한 이유는 PlugBear 덕분이다.

PlugBear — https://plugbear.io

PlugBear는 AI 빌더가 Slack, HubSpot 등의 일상 업무 제품에 그들의 AI를 쉽게 연결하게 도와줌으로써 사용자의 활동성을 이끌어내주는 제품이다. B2B 제품임에도 출시 한 달 만에 700명 이상의 사용자와 600개 이상의 조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각 수업마다 운영하는 Slack 채널에 AI 조교를 도입하기 위해 PlugBear를 활용하는 대학교 소속 엔지니어도 있고, 고객 지원 팀에서 Slack을 통해 사내 지식 관리 및 답변을 생성하고 운영하기 위해 PlugBear를 활용하는 회사도 있다.

우리를 포함해서 AI 시장의 대다수 참여자들이 AI 개발과 수직적 접근에 몰두하고 있을 때 OpenAI는 Dev Day에 Assistant와 GPTs라는 폭탄을 투하했다. 우리는 앞으로 각 회사들이 직접 AI를 더욱 쉽게 만들어서 활용할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AI의 활용성을 높이는데 일조하면서 가치 사슬의 맨 앞 단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PlugBear를 출시했다. 감사하게도 초기 고객의 반응이 좋아서 힘내며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아주 짧게 줄인 Runbear 팀의 한 해

올 한해 Runbear의 이벤트를 앞뒤 다 자르고 아주 간략하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창업 후 바로 Elaborate AI 출시
  • 피봇 결정 후 Runbear 출시
  • 투자 유치, 미국 출장, Runbear 주요 용례 피봇
  • OpenAI Dev Day에 충격 받고 PlugBear 출시

달성한 성과는 6개 아이디어 검증, 3개 제품 출시, PlugBear 출시 한 달 만에 700명 사용자와 600개 조직 확보, Runbear 디자인 파트너 확보, Elaborate AI 2k MAU로 정리할 수 있고, 달성하지 못한 목표로는 유의미한 매출 확보, 미국 이주를 통한 본격적인 시장 진입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의도적으로 팀의 크기를 작게 유지했기에 11월 말까지만 해도 팀에는 호성이와 나 둘 뿐이었다. 작은 팀이었기에 다양한 시도를 빠르게 해볼 수 있었지만, 작은 팀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성과를 만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창업자 2명 밖에 없었던 팀이 이번 12월을 기점으로 팀이 4명으로 커졌다. 함께한지 겨우 한 달 뿐임에도 그 사이 만든 결과물이 어마어마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동료들과 마음까지 너무 잘 맞으니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가 없다.

2024년 목표

Runbear Mission: To help people stay simple and be more productive.

우리 Runbear 팀의 미션은 사람들의 인지 과부하를 줄여주는 것이다. 현재로서 이를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도구가 AI인데, 정말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 업무에 AI가 충분히 녹아들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AI 자체를 Hype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아직 일상 생활에 덜 침투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팀은 PlugBear와 Runbear를 필두로 AI를 일상 업무에 도입할 때 겪는 어려움을 해결함으로써 미션을 달성할 것이다. 사람은 하던 행동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의 행동 변화을 최소화 하면서 가치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업무 흐름에 AI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도와준다면, 사람들은 AI를 통해 더 멋지고 훌륭한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2024년 목표는 충분한 가치 전달을 통해 최소 $1M ARR을 달성하는 것이다. 단지 매출 만이 아니라 ‘돈을 내고서라도 꼭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객 중심 원칙과 린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성장 엔진을 꾸준히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개인사

해수가 29개월이 되었고, 아내가 육아 휴직을 시작했다. 해수는 정말 빨리 크고, 말도 엄청 많고, 말도 참 안듣고, 갈수록 더 귀여워진다. 한 해 동안 프랑스, 미국, 일본을 다녀왔고, 해수는 총 5개 나라를 방문해 본 두 살 짜리 아기가 되었다. 호성이가 결혼을 했고, 친한 친구들이 임신을 했고, 지난 5년 간 만났던 새로운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의 새로운 사람(Special thanks to 강산아 팀장님!)을 만났다.

창업을 하면서 독서도 여유가 없으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터넷에서 업계 소식과 당장 실무에 필요한 지식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습득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는 깊은 지식을 쌓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너무 늦게 읽은 감이 있지만) 올해의 책으로 ‘Zero to One’을 뽑겠다. 창업하면서 ‘나만 삽질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운동을 잘 안하게 되면서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최근 허리가 아프더니 어깨로 올라왔다. 아내가 감명깊게 읽은 “하정우의 걷는 사람”의 영향을 받고 최근 퇴근길 1시간씩 걷고 있다. 내년에는 집에서 혼자 마시는 맥주를 줄이고, 꾸준히 하는 운동을 늘릴 예정이다.

2023년 한 해를 함께 일궈낸 우리 해수, 아내, 가족들, 친구들, 소중한 Runbear 동료들, 우리 Runbear 팀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지원해준 너무너무 소중한 분들께 감사 인사를 남기며 올 한해 회고를 마무리한다.

2024년에는 모두 다 행복하고 즐겁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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